귀농 관련 사이트를 검색했다.
앞으로 평생을 살 집인데...라는 문구를 보고는 더 이상 읽을 재간이 없었다.
귀농해서 평생을 살 집이라면 어떤 집일까라는 의문보다는 '평생'이라는 단어에 의구심이 들었다.
얼마만큼 살아야 평생일까?
지금의 나이는 얼마인데 앞으로 얼마나한 기간을 더 살아야 평생일까라는 숫자가 궁금하다.
혹자는 1~2년만 살아도 평생일 수 있고, 혹자는 60~70년 동안 사는 기간이 평생일 수도 있겠다.
평생을 살 집이라면 허접쓰레기나 거적으로 지은 집이 아니고, 제법 번듯한 집일 것 같다.
하루를 살더라도 제대로 지은 집에서 사는 게 더 쾌적한 삶일 게다.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집이라면 아무래도 돈이 제법 많이 들어가서 제대로 지은 집일 게다.
돈 많은 자본가에나 해당되는 소망이다.
미관말직으로 봉직하다가 귀향했다. 낡은 구옥에서 사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이 한두가지가 아닌 상황에 직면하였다.
낯선 곳에서 새로 삶을 시작하는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야 어떤 희망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겠지만 내 판단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과연 있으며, 얼마나 오랫 동안 무탈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떠오른다.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부가 내려 와 산다고 보면 무난하겠다. 부부가 오랫 동안 해로를 지속한다면야 좋으련만 사정이 변해서 어느 한 쪽이 질병으로 앓아 눕는다거나 사별하는 등의 경우가 허다하게 일어나게 마련이다.
불행한 시기와 시련이 언제 오느냐의 차이일 뿐 언젠가는 필연으로 오게끔 인간의 수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몇 년 전 청양군의 깊은 산속에 있는 야생화 농원에 간 적이 있었다.
부부가 외지에서 들어 와 깊은 산골짜기를 사고, 개간하고, 집을 지었다. 꽃장수답게 집 주변에 화원을 개설해서 꽃을 키우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얼마나 여기에서 사실 건데요?
들어와 살겠다는 자녀가 있습니까?"
"아들은 없고, 딸 둘인데 그들이 이곳으로 이사 와 살지는 않을 겁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70을 넘은 늙은 할배와 할멈은 어느 날엔가 꽃장수를 접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깊은 산골짜기에 형성한 화원은 어쩔 것이며, 그 집에는 누구 이사 와 살 것인지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폐가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일 뿐.
앞으로 평생을 살 집이란 해석을 이렇게 하고 싶다.
쉽게 살 수 있으며, 쉽게 팔 수 있는 집이라고.
아무리 번듯하게 잘 지었다고 해도,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어느날엔가는 낡고, 병들고, 죽어서 다른 사람이 살게 된다. 후대에 어떻게 처리될 것일까를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돈 주고 새로 짓거나 지은 것을 사는 거야 쉬울 수 있다.
하지만 돈 받고 파는 일은 참으로 지난할 수 있다.
돈이 많다면야 까짓것 안 팔리면 그냥 내버리고 떠나게 되겠지만
적은 돈을 이모저모 계량해서 마련한 집이라면 쉽게 거저 내다버릴 수는 없을 게다.
제값을 받으려면?
귀향한 나로서는 귀농귀촌자들이 집은 조그만하게 짓거나 사기를 권하고 싶다.
언제든지 떠날 채비를 하라는 뜻도 되겠다.
병 들면 도시로 되돌아 가야 할 상황이 생기며, 부부 어느 한 쪽의 사별로 인하여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자식이 들어 와 지속적으로 살 것인가도 따져 보아야 할 거다.
내 경우다.
65세. 어중간한 늙은이다. 몇 년 전에 귀향해서 집 주변의 텃밭에 과수묘목을 심고, 오랫 동안 묵혔던 텃밭의 잡목을 뽑아내고, 풀을 잡아가면서 밭의 꼴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해마다 과수목이 성장할수록 나도 지쳐갔다. 힘에 부친다는 뜻.
자식이 넷이라고는 하나 두 딸은 시집 갔으므로 벽촌에 내려 와 살 것 같지 않고, 두 아들 역시 시골로 내려 와 살 것 같지 않다.
객지생활에 오래 길들여진 나조차 힘이 드는데 서울이 고향이 된 그 자식들이 별 볼일도 없는 벽촌에 내려 와 살 것이라는 기대는 단 5%도 안 된다.
그런데 내가 더 늙고 병 들면? 내가 고향에서 마냥 견딜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고개가 가로 저어진다.
내가 귀향한 고향집과 내 소유의 땅은 나의 대에서 끝나는 것이지 자식들이 대를 이어서 살 것 같지는 않다. 갸들이 기어들어 온다면 수십 년이 경과된 뒤에나 가능할 일이다. 내가 앞으로 수십년 동안 건강하게 살 자신이 있을까?
대답은 전혀 아니다. 내가 떠난 뒤에는 고향집과 텃밭은 완전히 방치된 채로 사그라질 것임이 틀림없다.
귀향한 나조차 회의감이 드는 판국에 어떤 귀농귀촌 희망자는 .'평생을 살 집'이라는 단어를 썼다.
부럽다.
잘 해 보라는 말만 해야겠다. 나는.
내 고향은 서해안 벽촌.
갯바람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산등선 너머의 마을이다.
현재의 주민이 자꾸만 고령화 노인들로만 어쩌다 눈에 띈다. 이들이 죽으면 과연 얼마나한 주민이 남을 지가 극히 의문스럽다. 아마도 현재의 주민 숫자보다는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현재의 노인농민이 짓던 전답들은? 아마도 상당수가 폐농으로 전락할 것이다. 현재에도 폐전답이 지속적으로 느는 판국이다.
고향집으로 귀향한 아랫집의 경우다.
낡은 사랑채를 수선하여 작은 집으로 꾸몄다.
객지에서 오랫 동안 직장생활하다가 퇴직하여 고향에 내려왔으되 혼자만 내려왔다.
작은 집.
내가 보기에는 참 편리하게 리모델링했다. 작고 아담해도 조촐하게 사는데 하등의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
현명한 판단으로 여겨졌다.
아내와 자식들이 이따금 다녀갈 뿐 그는 혼자서 살고 있었다.
또 하나의 예다.
오랫 동안 객지로 떠났던 분이 늙어서야 병들어서야 혼자서만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내는 서울에서 그냥 살고.
빈 집을 조금 수리하고,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의욕적으로 살 것처럼 꼼지락거리다가 어느날엔가는 병이 더 깊어졌다.
그리고는 죽었다. 그가 가꾸었던 텃밭에 무덤 하나.
그리고는 도로 빈집이 되었다.
점점 낡아서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처지에 와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는 자식이 내려 올 리는 없고.
또 하나의 사례다.
서울로 떠나 사업에 성공한 중소기업사장인 후배는 고향의 낡은 집을 철거한 뒤 번듯한 전원주택을 신축했다.
연로한 그의 모친이 몇 년은 살았다. 혼자서 나이들수록 살 수 없기에 그는 모친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갔으며 지금은 노인요양원에서 편하게 모신단다. 몇 억 원을 들여서 신축한 그의 집은? 빈 집을 자물쇠가 지키고 있었다.
그가 고향집으로 내려오려면 아무래도 많은 세월을 더 보내야 할 것 같다.
또 하나의 예다.
동네에 빈 집이 있었다.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신청한 뒤 지방의회의 의원으로 출마한 분이 있었다. 새벽에 유세현장으로 가다가 대형사고를 당해서 부부 모두 절명했다. 사망 이전에도 빈 집이었던 집은 더 오랫 동안 빈집으로 초라하게 남았다. 그의 셋째동생이 조카가 상속받은 집을 포크레인으로 부셔버린 뒤 텃밭으로 만들었다. 서울 사는 둘째동생이 보고는 분개했다. 그 빈집이 얼마나 좋은데... 보수하면 참으로 좋은 집으로 개조할 수 있는데라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오히려 그가 이상하게 보였다.
조카의 집이며, 집터인데 삼촌이 뭐를 그리 욕심낼까? 또 수십 년 간 방치된 폐농가가 얼마나 값어치 있다고 리모델링을 해? 보수비가 신축비보다 몇 배나 더 들어가도 집꼴은 형편없을 만큼의 초라해질 터인데.
나는 좋은 말로 친구를 위로했다.
'아니야, 아무 쓸짝에도 소용없는 낡은 농가여. 개축할 가치가 전혀 없었어. 그냥 부셔버리는 게 훨씬 경제적이었어."
세상에 욕심낼 께 따로 있지. 죽은 형님의 재산에 욕심을 다 내다니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또 하나의 시례다.
지난해 여름. 지방의 농업기술센터에 교육받는 학생 중 학생장의 집으로 초대받아서 나는 아내와 함께 방문했다.
정말로 산골짝이다. 물어물어서 찾아 간 산 속의 집은 그림같은 전원주택이었다.
계곡물이 합류되는 지점의 땅에 시멘트 옹벽을 쳐서 물길을 에둘러 뽑아냈고, 600여 평의 밭 가운데에 주택을 짓고 나머지 땅에는 비닐하우스 두 동을 지었다. 누가 보아도 산뜻한 전원주택이었다. 집안팍을 둘러보았던 나와 아내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세상에나, 저런 산골짝에다가 외딴집을 지어서 어쩔 것인데. 전체 면적이라야 겨우 600여 평이라니.
다행히도 그는 비닐하우스를 짓는데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을 받았으며 특수채소를 재배해서 시장에 출하한다고 했다.
귀농에 성공했다는 뜻인데 나로서는 고개가 갸우뚱 했다. 왜 비싼 집을 지어? 나이가 벌써 60대 초반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잘 알아서 판단하고 선택한 결정을 제3자인 내가 궁시렁거릴 일은 아니었다.
내게 눈 먼 돈이 생겨서 내가 사는 농가를 리모델링한다거나 새로 집을 짓는다면 정말로 작은 면적으로 축소할 게다. 단 창고만큼은 크게 짓겠다.
자식들이 일년에 찾아 오는 횟수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며, 손님이 많다면 인근의 숙박시설로 나가면 될 것이다. 구태여 큰 집 관리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내 심정이다.
나는 '평생 살 집'이라기보다는 '잠깐 머물다가 가는 집'이라고 정정해야겠다.
평생 살 집이란 내 엄니처럼 일곱 살부터 살기 시작하여 동네혼인한 뒤 일생동안 사는 경우에는 가능한 말이라고 본다. 90여 년을 오로지 그 집에서만 사는 내 엄니의 경우에만 적합한 단어라고 본다.
나한테는 '앞으로 평생 살 집'이 어디일까? 하고 질문을 던져 본다.
글쎄다. 대답이 막막해진다.
내가 백살이나 이백살쯤 더 산다면야 대답할 수 있겠으나 나날히 건강이 악화되는 노인인 나로서는 대답이 궁해진다.
2014. 2. 13. 목요일. 풀씨한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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